최후의 템플기사가 남긴 핏빛 반지를 둘러싼 미스터리!
12세기 순종과 정결, 청빈 그리고 성지수호를 서원하며 등장한 템플기사단은 가난한 예수 그리스도의 기사를 자처하며 기독교 수호를 위해 주저 없이 가진 것 모두를 내놓았다. 심지어 자신의 목숨까지도... 그러나 그들에게 돌아온 것은 영광과 명예가 아니라 악마숭배와 동성애, 십자가 모독, 남색 등 온갖 이단적 죄목뿐이었다. 그들은 처형당하면서도 하나님의 일을 위해 모아놓은 재물이 불순한 자들의 손아귀에 넘어갈 것을 염려하여 비밀스러운 장소에 숨겨놓았고, 그 보물에 얽힌 수많은 이야기들이 아직까지 전해지고 있다.
우리에게 조선시대 500년이 무한한 이야기의 산실이듯 유럽인에게 중세는 신화가 현실이 되고 현실이 신화로 화하는 시대이며, 그 안에서 템플기사단 역시 고갈되지 않는 이야기의 원천이다. 특히, 『다 빈치 코드』 이후 많은 사람들이 역사 속에서 안타까운 운명을 맞이한 템플기사단에 더 많은 관심을 기울이기 시작하면서 이들을 소재로 한 수많은 소설과 영화가 만들어졌다.
역사 속 템플기사단은 당대 다른 교파와 달리 칙칙한 잿빛 사제복을 입고 장신구 하나 없이 짧은 머리와 짧게 다듬은 수염을 고수한 청빈의 상징이었다. 또한 노름이나 체스를 멀리하고, 사유재산을 금하고, 기도와 소식을 생활화하며 오로지 기독교 전파와 성지수호만을 위해 노력하는 수도자의 전형이었다. 그런 그들이 프랑스 필립 4세의 왕권 신장의 도구로 억울하게 희생되어서 그런지 오늘날에도 템플기사단의 후예임을 자처하는 수많은 결사회들이 그들의 정신을 기리고 있다.
스페인 최고의 역사소설가라는 극찬을 받고 있는 호르헤 몰리스트의 이 소설은 2004년 '현왕 알폰스 10세 역사소설상' 최종 후보에 노미네이트되는 한편, 출간 첫해에만 스페인에서 10만 부 이상 판매되는 기염을 토했다.
템플기사의 인장에 담긴 비밀, 동성애 혹은 결사 항전의 맹세
지금까지 전해지는 템플기사단의 인장을 보면 템플기사 둘이 말 하나에 함께 올라타고 있는 그림이 있다. 템플기사단에는 말이 부족하기는 커녕, 기사 일인당 최고의 준마 두 필씩이 배정되었다고 하는데 그 인장 속 그림은 무엇일까? 그것은 기사들이 서로를 지켜주기로 한 파트너들과의 맹세를 상징적으로 그려놓은 것이다. 죽음이 아니고서는 결코 자신의 파트너를 버리지 않는다는 맹세!
템플기사들에게는 극단적 상황에 이르렀을 때나 수적으로 열세에 있을 때에는 파트너와 둘이 한 쌍이 되어 전투에 임하며, 무슨 일이 있어도 파트너와 떨어지지 않는다는 강령이 있었다고 한다. 그들이 전쟁에서 승승장구할 수 있었던 것은 종교적인 신념도 신념이지만, 그 극적인 열정, 파트너를 위한 결사 항전 덕분이었는지 모른다. 그리고 아이러니하게도 그 맹세로 인해 템플기사단은 '동성애'라는 신성모독을 저질렀다는 혐의를 받고 역사 속에서 사라지는 운명을 맞이했는지도 모른다.
이 소설에서 템플기사단의 후예이며 주인공들에게 템플기사단의 보물을 찾으라는 유언을 남긴 엔릭은 동성애자다. 부인도 있고 오리올이라는 아들을 두고 있었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사회적인 가족의 형태일 뿐, 그의 부인 알리시아도 사실은 동성애자이며 그들은 서로의 생활을 존중해주기로 계약하고 아들까지 낳은 것이다.
이렇게 동성애자인 엔릭이 템플기사단의 후예라는 것이 과연 우연인지, 그리고 템플기사단의 맹세가 정말 동성애를 의미하는 것인지는 알 수 없다. 그러나 그것이 동성애이든 무엇이든 간에 목숨을 바쳐 신념을 이루고자 한 것임은 분명하며, 호르헤 몰리스트는 이들의 신념을 소설 안에 감동적으로 그려놓았다.